[2000년대 운동권①] ‘사교육 시장 큰손’ 억대연봉 ‘1타’ 강사로 대변신

학교에 다닐 때 잠깐 운동권 친구들과 함께 학교 축제를 준비한 적이 있다.

자잘한 프로그램팀에 소속돼 '찾아라 드래곤볼', '자문자답 OX퀴즈', '9000디스코' 뭐 이런 행사를 기획하고 운영했음.

지금은 유명인이 된 유병재 오빠도 그때 우리 팀 팀장이었어서 같은 팀에서 일하면서 처음 알았고,

삭발하며 등록금 투쟁하던 김윤영이나, 지금은 게임회사 다니는+작곡하는 택준오빠도 이때 알게 됐다.

대다수와 지금은 연락을 안하지만 그때 그들의 근황이 궁금하기도 하고 뭐 기사 핑계도 연락도 해보고 그러면서 쓴 기사.

기본적으로 똑똑한 애들이라 그런지 다들 제 앞가림 하면서 잘살고 있더군.

[기사링크]

http://newspim.com/news/view/20171109000162

http://newspim.com/news/view/20171109000187

[2000년대 운동권①] ‘사교육 시장 큰손’ 억대연봉 ‘1타’ 강사로 대변신

96년 기점 非운동권 대세…이후 운동권 별난 사람?
메가스터디 수강생 1위 조정식, 고대 출교 7인中 1인
학점·스펙보다 학벌·강의력 중요한 사교육 진출 활발

  • 기사입력 : 2017년11월12일 08:00
  • 최종수정 : 2017년11월12일 08:00


[뉴스핌=심하늬 기자] 학생운동이 대세였던 시절이 있었다. 1980년대 대학을 다녔던 이들 중에는 최루탄 한번 맞아보지 않거나, 화염병 한번 던져보지 않은 이를 찾기 힘들다.

90년대 초반까지도 대학에서는 운동권이 대세였다. 하지만 96년 한총련의 연세대 사건 등을 기점으로 학생운동은 빠르게 쇠퇴했다. 서울 주요 대학은 '비운동권' 학생회가 대세다.

때문에 2000년대 이후 대학사회에서 '운동권'은 조금 별난 사람들로 여겨졌다.

메가스터디 영어 영역 강사 조정식씨는 과거 학생 운동을 하다 고려대학교에서 출교 조치를 받았던 1인이다. <사진=메가스터디 홈페이지>

"취업도 힘든데 스펙을 쌓아야지 운동이라니?" 하지만 여전히 학내엔 '운동'하는 이들이 있었다.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2014년 세월호 희생자를 기리는 '가만히 있으라' 운동, 2016년 국정농단에 대응한 촛불집회 모두 대학에서 시작되거나 대학생들이 큰 역할을 했다.

소위 'SKY' 대학을 나와도, 영어 점수에 대외 활동에 온갖 스토리 없인 취업이 어려운 시대. 남들과는 조금 다른 길을 택했던 2000년대 운동권 학생들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레알 영어 조정식입니다"

2017년 현재 온라인 수능 영어 강사 중 가장 '핫'한 강사는 조정식이다. 2016년 12월 메가스터디에서 온라인 강의를 시작해 채 1년도 되지 않아 메가스터디 러셀 영어 영역 수강생 수 1위 강사가 됐다.

그는 뛰어난 강의력만큼이나 재미있는 일화로도 유명하다. 온라인 동영상 사이트에 올라온 '조정식쌤 서울대 면접 레전드썰'은 조회 수 120만회를 기록했다.

서울대 면접에서 특기를 '맨땅에 헤딩하기'라고 한 후, 실제로 맨땅에 헤딩했다. 1학년 2학기 학점 0.13을 기록해 친구들과 함께 '법대 삼식이'로 불렸다는 일화도 있다.

2015년 7월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열린 '고려대 당국의 출교-퇴학-무기정학 징계'에 따른 손해배상 판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반교육적 징계 규탄'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그런 그의 특이 이력은 학생운동 경력이다. 조정식 강사는 과거 고려대학교에서 출교됐던 7인 중 한 명이다. 고려대학교는 2006년 4월 전(前) 고려대학교 병설 보건전문대학 학생들의 총학생회 투표권 관련 시위에 참여한 7인을 출교 조치했다.

출교된 7인을 포함해 19명이 징계를 받았는데, 이들은 그동안 학교를 상대로 등록금 투쟁·100주년 기념 이건희 삼성회장 명예 철학박사 학위수여 반대 투쟁 등에 참여해 온 학생들이었다. 이들은 소송에서 이겨 전원 복교됐다.

조정식 강사는 온라인 강의에서 과거의 학생 운동 경험을 "데모해서 조선일보 1면에 난 썰", "4선 국회의원과 소송해서 이긴 썰" 등으로 짧게 언급하기도 했다.

논술강사로 대변신

학생 운동을 했던 이들이 사교육계로 진출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윗세대 중에서는 스카이에듀를 설립한 사회탐구 강사 이현, 대중을 상대로 한 강의로도 널리 알려진 사회탐구 강사 최진기 또한 스스로 열혈 '운동권'이었음을 밝힌 바 있다.

사교육계는 상대적으로 학벌과 강의력이 중요하고, 학점이나 나이는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학생 운동을 하다 취업 시기를 놓치거나, 기업에서 원하는 스펙을 쌓지 못한 이들이 진출하기 쉽다.

한 진보적 시민단체 관계자는 "단체에 후원하는 이들 중 강남에서 논술 강사로 활동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라며 "대부분 대학 때 학생 운동을 한 이들"이라고 전했다. 기본적으로 글솜씨가 좋고 논리적인 생각을 즐기는 이들이 학생 운동을 하다 적성을 살려 논술이나 국어, 사회탐구 영역의 강사가 된다는 이야기다.


[2000년대 운동권②] 정당·시민단체·언론계 진출…공시족·샐러리맨도 상당수

졸업 앞두고 학생 운동 활동 이어갈 지 선택
취업난에 공무원·노무사·변호사시험 준비도

  • 기사입력 : 2017년11월12일 08:01
  • 최종수정 : 2017년11월12일 08:01



    [뉴스핌=심하늬 기자] 학생운동이 대세였던 시절이 있었다. 1980년대 대학을 다녔던 이들 중에는 최루탄 한번 맞아보지 않거나, 화염병 한번 던져보지 않은 이를 찾기 힘들다.

    90년대 초반까지도 대학에서는 운동권이 대세였다. 하지만 96년 한총련의 연세대 사건 등을 기점으로 학생운동은 빠르게 쇠퇴했다. 서울 주요 대학은 '비운동권' 학생회가 대세다.

    때문에 2000년대 이후 대학사회에서 '운동권'은 조금 별난 사람들로 여겨졌다.

    지난 10월 23일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노동당 탈핵운동본부 관계자 등이 신고리 5·6호기 공사재개 반대 및 신규 핵발전소 건설 전면중단 촉구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취업도 힘든데 스펙을 쌓아야지 운동이라니?" 하지만 여전히 학내엔 '운동'하는 이들이 있었다.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2014년 세월호 희생자를 기리는 '가만히 있으라' 운동, 2016년 국정농단에 대응한 촛불집회 모두 대학에서 시작되거나 대학생들이 큰 역할을 했다.

    소위 'SKY' 대학을 나와도, 영어 점수에 대외 활동에 온갖 스토리 없인 취업이 어려운 시대. 남들과는 조금 다른 길을 택했던 2000년대 운동권 학생들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정당이나 시민단체로

    신지혜 노동당 고양 당협위원장은 대학 시절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06학번인 그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 이미 학생 운동이 '대세'가 아니었지만, 그래도 학내에는 사회 활동을 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는 '인연 맺기 학교' 등 나눔 활동을 하고 사회학과 여성학을 공부하며 사회 참여 의지를 다졌다.

    신 위원장은 "학생 운동을 했던 친구들은 졸업할 시기에 계속 운동을 할지 말지 선택하게 된다"라며 "떠나는 사람이 더 많긴 했지만 계속해서 활동을 이어나가고자 하는 이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신 위원장과 함께 진보정당에 몸을 담고 있는 이들 중 대부분은 대학에서 학생 운동을 했던 이들이다. 그는 "우리나라처럼 정당 활동이 제한적이고 폭넓지 않은 국가에서 원외 진보 정당은 사회 문제에 관심 있는 청년들로 채워지게 된다"고 말했다. 노동당 외에도 녹색당·민중당 등 원외 진보 정당은 대학에서 활동했던 청년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활동을 이어나가기 위해 시민·사회 단체에 취업하는 경우도 있다. 2008년도에 대학에 입학해 학생 자치 활동을 했던 A씨는 "경실련·알바노조 등 사회단체에 취업한 친구들이 많다"며 "학문적 관심이 큰 경우 관련 대학원에 진학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기업 면접서 "운동 왜 했냐" 묻기도

    학생 운동 경력을 어필할 수 있는 곳 중 하나는 언론사다. 관련 활동이 사회에 대한 관심으로 여겨지기 때문. 운동을 하다 언론사에 취업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대학에서 학생 운동을 했던 09학번 박모씨(28)는 진보적 언론의 기자다. 그는 "어차피 돈은 벌어야 하는데, 사회 참여나 변화를 이끌어 내는 직업을 갖고 싶었다"고 기자가 된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운동하면서 토론도 많이 하고 대자보도 많이 썼는데, 그때의 경험 덕에 말발이 좀 세진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공무원·노무사·변호사 등 시험을 준비하는 이들도 많다. 신지혜 위원장은 "90년대 운동했던 선배들은 취직이 잘됐다고들 하는데, 우리가 대학에 들어갔을 때(2006년)는 '88만원 세대'라고 하고, 전체적으로 힘든 시기였다"며 "취직이 어려워 실력으로 승부할 수 있는 공무원 시험 등을 보는 친구들이 많았다"고 했다.

    사회에 관심을 가진 이들은 자연스레 노무사·변호사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직업으로 눈을 돌리는 경우도 많았다.

    지난 7월 서울 동작구 에듀윌 서울대방학원에서 열린 '2018년도 9급 공무원 시험대비 합격전략 설명회'를 찾은 참석자들이 강의를 경청하고 있다. [뉴시스]

    전혀 상관없는 분야로 취업하는 경우도 있다. 2010년대 서울 모 대학 문과대 학생회장을 지냈던 B씨는 학창 시절 내내 학생 운동을 하면서도 성적 장학금을 놓치지 않았고, 관련 자격증을 따 금융계에 입사했다. B씨의 학과 후배는 "그 선배는 학교 다닐 때 운동을 열심히 하면서도 성적도 좋아 '전설'로 여겨졌다"고 했다.

    운동권 경력을 가진 이들이 기업 면접을 보러 가면 "왜 운동을 했는지" 등을 물어보는 경우도 흔하다. 당락에 영향을 끼치는지 분명하지 않지만, 학생들은 '기업이 좋게는 안 볼 것'이라고 추측했다.

    2000년대 학생 운동을 했던 C씨는 "시위에 나가면 벌금을 많이 맞게 되는데, 기업 면접에서 이런 경력을 물어보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특히 병역 거부를 한 경우, 기업 면접에서 불리한 질문을 받게 된다고 했다. 이어 그는 "친구가 모 대기업 면접에서 운동권 경력에 대한 질문을 집중적으로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며 "꼭 그것 때문에 탈락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좋은 영향을 끼쳤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