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치소 간 대통령도 3평…그래도 맘 편한 게 제일"

한 평 노동 시리즈는 원래 톨게이트 사무원과 길거리 신문 가판대를 생각했던 기획이었다. 그런데 길거리 가판대는 약하다는 선배들의 지적으로 지하주차장 요금 사무원을 취재하기로 했다. 하루종일 지하에서 빛도 못보고 사는 심정이 어떨까 싶어서.

그래서 동네 쇼핑몰 건물 지하주차장에 취재를 가서 근무하시는 분을 인터뷰하고 설명도 다 들었지만, 기사가 부정적으로 나갈 것을 우려한 그분들의 경계 때문에 기사감이 될만한 이야기를 전혀 듣지 못했다. 저녁에 취재하느라 초과근무까지 했는데!ㅜㅜㅜ

시리즈 중 2편을 쓴 선배 또한 지하철 기관사를 취재하려던 계획이 잘 안돼 '땜빵'으로 구두 미화원을 취재했다. 그만큼 섭외가 어려웠던 기획이다.

무튼 마감은 다가오고, 내 취재는 엎어졌고...했는데 손을 마냥 놓고 있을 수는 없어서 무작정 근처 지하철역 가판대로 향했다.

가판대에 갈 땐 팀장도 선배도, 나조차도 거기 무슨 기사거리가 있겠나 하는 마음이었다. 

근데 가보니, 기사거리가 있었다.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무작정 말을 걸고, 그 사람의 얘기를 듣는 법을 알려준 기사이기 때문에 유독 기억에 남는다.

지하철 가판대 상인 아주머니는 한 시간 정도 나와 대화를 나누다 눈물을 흘리시기도 했다. 기사 제목이 된 아주머니의 워딩이 너무 좋아 감탄한 기억도. 

취재하다 알게된 지하철 가판대의 구조적 문제도 기사감이었지만, 기사에는 쓰지 않았다.


[기사링크]

머니투데이 http://news.mt.co.kr/mtview.php?no=2017042715202070628&type=1


"구치소 간 대통령도 3평…그래도 맘 편한 게 제일"

['한 평' 노동]<3>지하철 가판대 상인 "없는게 없는 땅속 만물상…의무실에 외국인 안내까지 척척"

머니투데이 이슈팀 심하늬 기자 |입력 : 2017.05.01 06:40|조회 : 25862
편집자주 한 평(3.3㎡) 남짓한 공간의 일터에서 깨어있는 시간 대부분을 보내는 이들이 있다. 업무 공간이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이 주목받는 지금, 5월1일 '근로자의 날'을 맞아 각기 다른 일에 종사하는 ‘한 평 근로자'의 생활과 근무 환경을 3회에 걸쳐 들여다본다. <1회>톨게이트 요금 징수원-<2회>구두 미화원-<3회>지하철 가판대 상인

딱 한 평(3.3㎡). 좁을 것 같지만 과자나 음료는 물론 마스크, 이어폰, 벨트, 신발 깔창 접착제까지 없는 게 없다. ‘땅속 만물상’ 지하철 가판대다.

유난히 화창한 지난달 28일 오후, 서늘한 지하도 시청역 가판대 안에서 점원 안모씨(67·여)가 자리에 앉아 쿠키를 나눠 담고 있다. “잘 팔리진 않는데 그래도 가끔 사가는 사람들이 있어요.” 직접 소분한 쿠키는 성분표를 붙여 판매한다.

이곳에서 5년째 일하고 있는 안씨의 가판대는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돌아간다. 오전 아르바이트생은 아침부터 1시까지, 안씨는 1시부터 밤 10시까지 맡는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쉬지 않고, 일요일도 월 2회 일한다.

◇"다 비슷하게 안팔려"…하루 10만원 매출도 빠듯

“다 비슷하게 안 팔려요. 카드기가 없어 한 번에 많이 팔 수도 없고 500원, 1000원 장사지 뭐.” 

뭐가 제일 잘 팔리냐는 기자의 질문에 안씨는 푸념하듯 말했다. 카드사 수수료를 감당하기 어려워 지하철 가판대에는 대부분 신용카드 결제기가 없다. 손님들은 보통 1000원 내외의 주전부리를 산다. 

기자가 가판대에 있던 1시간 동안 5명의 손님이 찾았지만 3000원 이상의 물품을 사는 경우는 없었다. 안씨는 “예전에는 신문이라도 잘 팔렸는데 요샌 다들 스마트폰을 봐서 그마저도 안 팔린다”고 넋두리했다.

같은 역 건너편 가판대 상인 박모씨(58·여)도 사정은 비슷하다. 18년 전 남편과 사별해 생계가 막막했지만 목, 맹장 등 수술만 네 군데를 해 일자리 얻기가 쉽지 않았다. 박씨는 “무거운 물건 드는 일을 할 수가 없어 찾은 일이지만 하루 매출 10만원도 빠듯하다”고 전했다.

◇화장실 가는 게 '큰 일'…자기 전에 코 풀어도 새까매

가판대 상인은 화장실 가는 게 큰 고민이다. 자리를 비우거나 졸면 물건을 훔쳐가는 경우가 꽤 있다. 화장실 한 번 가겠다고, 내놓은 물품을 다 정리해 넣을 수도 없다. 신문 갖다 주는 사람이나 지하철을 오래 기다리는 승객이 있으면 가게를 잠시 맡기고 겨우 다녀온다.

지하철 승강장은 공기가 썩 좋지 않다. 박씨는 면봉을 코에 넣었다 빼 보여줬다. 흰 면봉이 검게 변했다. 박씨는 “집에 가서 소금물로 서너 번 헹궈도 자기 전 코를 풀어보면 새까맣다”며 “식도에 병이 있는데 더 심해질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스크린 도어가 생겨 예전보단 공기가 많이 나아졌다. 박씨는 “먼지가 싫지만 덕분에 마스크를 판다”며 웃어 보였다. 

◇노숙자 음식 나눠주고 쓰러진 사람 구하기도

비 오는 날이면 박씨는 멀쩡한 음식을 쓰레기통 주위에 슬며시 놓는다. “비 오면 노숙자들이 어디선가 나타나 쓰레기통을 뒤져요. 나도 힘들지만 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이니까.”

지하철 안이나 승강장에서 쓰러진 승객을 도울 때도 있다. 빈혈이나 공황 장애로 쓰러진 사람을 행인들이 가판대로 데려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 119와 역무실에 연락하고 쓰러진 사람에게 물을 먹여 보내는 건 웬만한 의무실 직원 수준이다.

“길 물어보는 사람도 반가워요. 여기 종일 혼자 있다 보면 심심해져.” 박씨 가게의 벽에는 몇 번 출구에 무엇이 있는지 적힌 종이가 있다. 길을 알려주려고 역무실에 요청해 받았다. 말 거는 사람 셋 중 둘은 길을 묻는다. 박씨는 외국인에게 길을 알려주기 위해 영어 공부도 한다. 가게에는 3개국어로 써진 ‘마스크’와 ‘과자’ 이름표도 있다. 직장에 다니는 박씨 딸이 써줬다.

지하 한 평 좁은 공간에서 온종일 답답하지는 않을까. “구치소 간 대통령도 나보다 넓은 3평에 산다지만 그 사람은 속이 시끄러울테고, 나는 남 눈치 안보고 마음이 편하니까 내가 낫죠. 마음이 불편한데 대궐에 있으면 뭐하겠어요.”